안 읽음이 알려주는 것
읽지 않았다는 표시를 보면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갑니다. 일부러 안 여는 걸까, 알림을 꺼 둔 걸까, 아예 막아 둔 걸까 하는 생각입니다.
그런데 표시 하나가 알려주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. 지금은 그 말이 열리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까지입니다. 이유는 표시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.
알 수 없는 이유를 하나로 정해 두면 그다음 하는 일이 전부 그 짐작 위에 올라갑니다. 그래서 안 읽은 동안은 안 읽었다는 사실까지만 보시는 편이 낫습니다.
안 읽은 날을 세지 않습니다
안 읽은 날을 하루하루 세다 보면 그 숫자가 마음을 정합니다. 사흘이면 아직 괜찮고 일주일이면 끝난 것 같은 기준이 저절로 생깁니다.
그 기준은 내 마음이 만든 것이지 그 사람 쪽 사정이 아닙니다. 오래 열지 않던 말을 몇 주 뒤에 여는 사람도 있습니다.
지우고 싶어질 때
안 읽은 채로 시간이 지나면 보낸 말을 지우고 싶어집니다. 읽기 전에 거둬들이면 없던 일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.
그런데 지운 자리에는 지웠다는 표시가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. 짧은 안부 하나보다 그 표시가 더 눈에 띄고, 무슨 말이었는지 더 궁금하게 만듭니다.
짧게, 답을 재촉하지 않는 말로 보냈다면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. 한 번 건넨 안부 하나로 관계가 망가지지는 않습니다.
이어 보내지 않습니다
안 읽었으니 못 본 것 같아 한 번 더 보내고 싶어집니다. 그런데 나중에 열었을 때 한꺼번에 쌓인 말은 하나하나보다 무게로 먼저 읽힙니다.
처음 보낸 말이 열리기 전에는 다음 말을 얹지 않으시는 편이 낫습니다. 덧붙이고 싶은 말은 메모에 적어 두세요. 며칠 뒤 다시 읽으면 대개 보내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.
그 사이의 몫
말을 건넨 뒤의 시간은 상대의 몫이 아니라 내 몫입니다. 확인하는 횟수를 아침과 밤 한 번씩처럼 정해 두고, 그 사이에는 내 하루를 사는 쪽으로 옮겨 오셔야 버틸 수 있습니다.
다음에 건넬 때가 언제인지 알아 두면 지금은 기다리는 날이 아니라 지나가는 날이 됩니다. 사주로는 두 사람 글자에서 서로 당기는 달을 찾고, 그 안에서 날을 봅니다.
메일로 자주 받는 이야기
안 읽는다는 메일에는 대개 자책이 같이 옵니다. 괜히 보냈다, 기다리기로 해 놓고 못 참았다, 내가 다 망쳤다는 말입니다.
그런 메일에는 먼저 보낸 일을 탓하지 마시라고 답장드립니다. 이미 건넨 말은 되돌릴 수 없지만, 다음 한 번을 언제 건넬지는 고를 수 있습니다.